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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생각하는 학문이다. 이 세상에 생각이 필요없는 학문이 어디 있겠냐만은 다른 것들이 생각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반면 철학은 생각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다른 학문과 차이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철학을 '메타 학문' 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철학은 철저한 암기 과목이었다. 심지어 과목명도 '도덕' 혹은 '국민윤리' 였지만 물론 전혀 도덕적이지 못한 선생 밑에서 절대 윤리적인 방식이라 볼 수 없는 방법으로 배워야 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철학은 온데간데 없이 단지 흄이니 키에르케고르니 보드리야르니 하는 발음하기도 힘든 철학자 이름을 달달 외워야 했고 성선설을 주장한게 맹자인지 순자인지 헷갈려 시험 때마다 연필을 굴려야 했으며 왜 에피쿠로스 학파는 에피쿠로스가 창시했는데 스토아 학파는 스토아가 창시하지 않았는지 중간 고사 채점 때마다 분을 삼켜야 했다.
요는 이렇다. 철학은 위에서 말한 그런 철학자나 그들의 이론을 들먹여야만 철학이 아니다. 철학은 생각의 학문이고 따라서 모든 것에 의심을 갖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 철학의 본질이다. 그런 면에서 사실 우리는 매일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오늘도 수많은 블로거들이 다른 이들의 글에서 별 시덥잖아 보이는 사항 하나 하나에 댓글로 딴지를 걸고 있다. 그저 그냥 아무 생각없이 넘어가줘도 별 상관없을 것 같은 이야기에 '님 그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인것 같네요...' 뭐 이렇게 이죽거리지 않는가? 그렇다! 철학은 쉽게 말하면 딴지를 학문적으로 승화한 것이다.
이 책은 지금껏 많은 철학자들이 걸었던 유명한 딴지(이 책에서는 이것을 철학 퍼즐이라고 점잖게 표현하지만)들 중 일부를 소개한 책이다. 일단 구성이 독특하다. 어린 시절 즐겨 읽었던 스토리형 퍼즐책('A를 선택했다면 53 페이지, B를 선택했다면 72 페이지로 가시오' 라는 식의 지문이 달린 책) 과 유사한 방식을 취했다. 그래서 윤리, 논리, 형이상학 등의 다양한 주제를 연관된 챕터 별로 쫓아가며 읽는 재미가 있다.
내용 면에서는 헌혈이나 장기 기증, 태반크림 등과 굶주림을 면하기 위한 식인 행위의 차이는 무엇인지, 1년 동안 호위호식하던 칠면조가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크리스마스 이브날에도 주인이 주는 먹이를 기대했다가 먹음직스러운 구이로 재탄생하는 반전 동화에 나오는 귀납 추리의 오류라든지, 내가 보는 빨간색과 남이 보는 빨간색이 정말 같은 색깔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지, 시간은 정말 흘러가는 것인지 등등의 많은 철학적 질문들을 예화와 함께 비교적 어렵지 않게 풀어나간다.
사실 이런 책 하나 읽는다고 사람이 철학적이 되는 것은 아닐게다. 아니 '철학적' 이라는 말도 좀 우습다. 다만 2시간 정도 읽고 나면 그만인 그저 그런 책들 보단 좀 더 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게다가 가끔은 이런 책을 통해서 딴지의 내공을 쌓아놔야 극장에서 '대한 뉘우스'를 보며 낄낄거리는 단무지는 안되지 않겠나 싶다. 요컨데 똥인지 된장인지는 구별하고 쌈싸먹는 인간이 되자는 말이다.
p.s. 책의 뒷 표지에 이 책을 읽고 나면 '저녁 식탁 위에 활기찬 논쟁이 불꽃처럼 피어날 것이다.' 라는 추천사가 있던데 글쎄... 저녁 식탁에서 '사람을 먹으면 왜 안되는가?' 에 대해서 토론 했다가는 앞으로 고기 반찬 볼 일이 별로 없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