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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을 사랑한 과학자 내가 읽은 책들



  1997년 4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학교앞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죠. 전날 밤엔 비가 많이 왔었구요. 전 아침에 일어나서 밖에 내팽겨처져 있던 운동화가 흠뻑 젖은 걸 보고서야 그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침 지갑에 돈은 똑 떨어져 있었고 집에 먹을 건 없고...해서 허기진 배를 달래고 아점이라 하기에도 늦은 끼니를 때우기 위해 젖은 운동화를 찌걱거리며 발걸음을 학교로 향했습니다. 빈대붙을 타겟을 물색하려는 것이었죠...
 마침 써클실엔 90학번 베이스치는 선배가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 선배가 마침 잘왔다며 베이스 줄 좀 사오라고 준 돈으로 전 학교 앞 식당에서 과감히 부대찌개를 사 먹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선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까 고민하며 학생회관 앞 계단에 앉아 운동화를 말리고 있었죠. 운동화는 질척거리고 배는 고팠고 그래서 앞뒤 생각없이 선배돈 유용해서 밥은 사먹었는데 그 선배한테 이 사실을 어찌 알려야 할지 두렵고...어쨌든 굉장히 우울하고 피곤한 하루의 시작이었습니다. 근데 문득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었는데 하늘에 구름이 그렇게 아름다울수가 없더군요. 언제 비가 왔었냐는듯이 봄햇살은 참 따뜻했구요... 우습게도 그렇게 한참 구름을 바라보고나니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이 넘게 앉아 있었던것 같네요.
 그리고 그 때부터 구름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참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대책없던 시절이었지만 그 때의 느낌은 아직 잊을 수가 없네요.

 이 책을 읽게 된건 순전히 이 책의 표지가 그 당시 제가 본 구름을 떠올려줬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구름연구에 평생을 바쳤던 한 과학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운 권운, 적운, 층운 등의 구름 분류 체계를 만든 사람이기도 하구요. 오늘날의 기상학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는군요.

 언젠가 TV에서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습니다. 지구의 일사량이 지난 수십년 간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발생하는 환경적 문제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일사량 감소의 증거로 러시아의 한 지역에서 측정한 자료가 나오더군요. 그 지역에서는 지난 백 여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계측용 물그릇에 물을 채워서 하루동안 증발되는 물의 양을 측정해 왔다고 합니다. 물의 증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일조량인데 증발량이 몇 십년동안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전체 평균 기온이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일조량은 오히려 감소해왔다니...언뜻 직관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실제 이런 증거 자료가 없었다면 아마도 쉽게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기상 이변에는 일조량 감소에 의해 바닷물 증발량이 감소한 것이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합니다.

 물의 증발량을 측정하는 것...그야말로 쓸데없는 짓이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허나 그런 하찮은 행동과 기록이 모이면 이런 위대한 이론의 기반이 될 수도 있는 것이겠죠...
 이 책에 나오는 구름에 관한 연구도 처음엔 비슷한 것이었을 겁니다. 구름을 매일 관찰하고 그림을 그리고 그 특징을 분석하는 것...그 당시 사람들의 눈엔 얼마나 무의미해 보였을까요? 하지만 그런 무의미해보이는 행위가 모여 오늘날 기상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겠죠.

 사람들은 누구나 사회에서, 회사에서, 학교에서 눈에 띄는 중요하고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싶어합니다. 사실 그게 더 보람되고 재미도 있습니다. 시스템 아키텍쳐를 만드는 것이 더 멋져 보이고 재밌지 운영이나 유지보수나 하는 건 볼품없고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고 해서 보람을 느끼기도 힘들죠...
 근데 그런 하찮아 보이는 일들이 오랜 시간 쌓였을 때는 누구도 범접하기 힘든 성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2007년에 구글에서 발표한 대용량 하드 디스크의 실패 트랜드 고장 경향 분석에 관한 논문도 그 비슷한 성과겠죠...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기발한 착상, 복잡한 알고리즘 개발 등도 아무나 따라하기 힘든 일이긴 하지만 이렇게 오랜 기간 무언가를 은근하고 꾸준하게 정리하고 행동해온다는 것도 분명 큰 재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둘 다 분명 남다른 열정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겠죠...

 p.s. 참! 선배 돈으로 부대찌개를 사먹었던 그 날 전 다행히 무사히 살아남았습니다. 써클실로 돌아가 '학교 앞에 베이스 줄 파는 데는 없고 배는 고프고 해서 그 돈으로 밥을 사먹어 버렸다'고 말을 했더니 그 선배는 그냥 너털웃음을 터뜨리더군요... 그 선배는 지금 잘 살고 있나 모르겠습니다. 문득 만나서 부대찌개에 소주나 한잔 하고 싶군요... ;)

덧글

  • 어이 2008/02/01 15:35 # 답글

    동의합니다. 그래서 저도 더 살찌기 전에 몸무게와 허리둘레를 꼬박꼬박 기록해 둘려고 그래요. (..)
  • silverbird 2008/02/01 18:24 # 답글

    // 어이
    멋지군요! 아마도 한 천년 쯤 후에 인류학자들에 의해 과거 인류의 체형을 조사하는데 중요한 기반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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