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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는 정당한가? 단상

 사형제도에 관한 토론
 인간적인 사형제도를 찾아 - BBC 다큐멘터리

 사형 집행 시 사형수를 고통없이 죽이는 것이 과연 얼마나 인간적인 것일까? 물론 누구나 최대한 고통없이 편안하게 죽기를 바라며 예로부터 죄인을 사형시킬 때도 죄의 경중에 따라 그 잔인함과 고통의 크기를 달리 했다는 사실로 미뤄볼 때 고통없이 죽이는 것은 확실히 고통스럽고 잔인하게 죽이는 것보단 낫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 생존의 욕구는 그 어느 것보다 큰 욕구 중 하나이기 때문에 - 아마 이와 맞먹거나 때론 이보다 더 큰 욕구를 하나 꼽자면 종족 보존의 욕구쯤 되지 않을까? - 이미 죽음 그 자체는 당사자에게 큰 고통과 스트레스가 된다. 심지어 자신이 언제 죽는지 뻔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래도 최대한 고통없이 죽여줄께...'가 과연 얼마나 그에게 위로가 되며 인간적인 존엄성을 유지시켜 줄지는 의심이 된다.

 사실 사형 제도의 존폐 및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인간 존엄성을 들먹이는 것 자체가 위선이고 역설이다. '제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 하더라도 인간 존엄성 측면에서 볼 때 함부로 그의 목숨을 취할 수는 없다'라는 주장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을 평생 사회에서 격리시키고 감시와 통제 속에서 살아가게 하는 것은 인간 존엄성을 지키는 것일까? 심지어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은 평생을 감옥에서 고통받기 보다는 차라리 깨끗하게 죽는게 낫다' 라고 주장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종신형을 부과하는 것이 인간 존엄성 측면에서 올바른가? 아니면 사형 집행 여부를 당사자가 선택하게 해야 할까?
 숀 펜의 연기가 돋보였던 영화 'Dead Man Walking' 에서는 사형 제도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게 만든다. 특히 흉악한 범죄자였던 주인공이 사형을 앞두고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지만 결국 사형을 피하지 못한 채 독극물 주사를 맞으면서 슬픔과 회환에 가득 찬 표정으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적어도 그 순간엔 누구나 사형 폐지론자가 되고 말 것이다.
 반면 나는 오래 전에 -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 한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은 범죄를 저지르고 종신형을 선고 받는다. 그러나 감옥에서 죄수들간에 암암리에 자행되는 폭력과 강간 등으로 고통을 받으며 차라리 죽기를 갈망하다 결국 마지막에는 탈옥(사실 탈옥이라 말하기 난감한데 그는 대낮에 보란듯이 걸어서 교도소 입구로 걸어나가기 때문이다.)을 시도하다가 교도관이 쏜 총을 맞고 숨을 거둔다. 특히 총에 맞고 쓰러져 서서히 의식이 흐려가지만 마침내 자유를 찾았다는듯한 그의 연기를 보면서 말 그대로 '그래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지...' 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확실히 인간 존엄성을 근거로 사형 제도의 존폐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런 역설을 해결할 수 없는듯 싶다(다소 논지를 확장해보자면 이렇게 인간 존엄성을 근거로 한 사형 제도 존폐 여부에 대한 논의는 낙태나 안락사에 대한 논의와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므로 사형 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라는 주장 역시 위와 비슷한 위선을 피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누군가 살인 누명을 쓰고 법정에 섰다고 하자. 이미 명백한 증거가 있는 상황에서도 그는 끝까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법정은 이렇게 판결해야 할까? '피고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고 그 수법도 잔인하기에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잘못된 수사의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종신형을 선고함!' 그리고 몇 년 혹은 몇십 년이 흐른 뒤 마침내 진범이 잡혀서 그가 풀려난다고 할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할까? '그래도 사형이 아니라 종신형이였기에 이렇게 풀려날 수 있었으니 참 다행이네요...' 이미 그가 그동안 받았을 고통과 그의 식구들이 감수해야 했을 사회적 시선과 스트레스는 어떤가? 하물며 최근의 안양 실종 어린이 살해 용의자의 사례로 볼 때 우리는 판결의 옳고 그름까지 갈 필요없이 유력 용의자로 지목되는 순간 그를 범죄자로 낙인찍는 것이 현실이다. 어찌되었든 죽는 것보단 나을지 모르는 건가? 이렇듯 '어찌되었든 죽어서 완전히 끝장나는 것 보단 낫다'는 식의 주장은 위의 인간 존엄성에 근거한 사형 제도 폐지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형 제도가 또다른 살인을 낳는다'는 주장은 궤변이거나 지나친 감상주의다. 만약 '사형 집행도 일종의 살인이다.'라는 관점을 수용한다면 우리는 그동안 영웅으로 추앙했던 수많은 전쟁 영웅들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지 난감해진다. 그런 논리라면 사극에서 그렇게 멋진 모습으로 우리를 매료시켰던 주몽이나 광개토대왕은 희대의 살인마일 것이며 안중근은 고작 일개 테러리스트에 불과한 존재가 되고 만다(실제 난 오래전에 상대적 입장에서 보면 안중근은 테러리스트아닌가? 라는 주장을 했다가 식구들에게 왕따가 될 뻔 했다). 심지어 사형 집행의 행위 자체에 집중해버리게 되면 '그럼 사형수들끼리 서로 죽이게 하면 되지...'라는 식의 의견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형 제도 폐지론은 부당한가? 그렇지는 않다. 문제는 폐지론의 근거가 잘못되었다는 점이다. 바로 앞에서 언급했듯이 위와 같은 위선이나 역설이 발생되는 이유는 사형 집행의 이유가 아닌 그 행위 자체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사형 제도는 일종의 죄에 대한 처벌 행위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죄에 대한 처벌을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심리적인 측면을 보자면 아마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혹은 '받은만큼 돌려주마' 식의 보복 심리가 가장 클 것이다. 사형 제도 폐지론자를 공격함에 있어서 자주 등장하는 질문이 바로 '당신의 가족을 죽인 살인마를 용서해 줄 수 있겠느냐?' 라는 것이다. 당연히 감정적으로 볼 때 그 놈은 때려 죽이거나 씹어 삼켜도 시원치 않을 놈이다...^^; 그렇다고해서 이런 보복 심리를 개인적으로 해결할 경우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이런 욕구를 해결하는 것이 사법 제도인 것이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악독한 범죄가 있지만 유독 살인죄에 대해서 주로 사형 집행이 이뤄지는 이유는 이런 이유가 크다.
 또 한 가지 죄를 처벌하는 이유는 범죄 예방을 위해서이다. 즉, 죄를 엄중히 처벌함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에게 죄를 저지르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를 보내는 것이다. 예로 부터 사형 집행을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에서 했던 이유는 이런 이유가 크지 싶다(물론 사람들의 호러나 스플레셔 영화를 좋아하는 성향같은 변태적 욕구 충족의 의미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의미에서 사형 집행은 그 상징적 의미가 크다. 왜냐하면 처음에 언급했듯이 인간에게는 본능적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가장 크기 때문이다. '이 범죄를 저질러도 최소한 죽지는 않으니까...' 와 '이 범죄를 저지르면 난 끝장이다...' 는 아무래도 심리적 압박의 차이가 크다. 

 결국 사형 제도를 포함한 범죄를 처벌하는 이유는 사회 질서 유지라는 대의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개인의 보복 심리를 대리 만족시켜줌으로써 분노를 조절하고, 예비 범죄자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제공함으로써 강력 범죄로부터 사회 구성원들을 지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형 제도의 존폐 여부를 판단할 때는 사형 제도 자체가 이런 사회 질서 유지에 끼치는 영향력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 되겠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간과한 사항이 있는데 바로 해당 범죄 행위의 고의성 여부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해서는 분노하지만 누군가 실수로 난로를 끄지 않고 잠들어 수 십 명이 죽었다고 한다면 그의 실수를 비난하거나 동정할지언정 전자 만큼의 분노를 표출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후자에게는 누군가를 죽이려는 고의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정신 질환자가 저지른 범죄를 예외적으로 다루는 사법 제도도 많이 있다. 영화에서도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다중 인격이나 우울증 환자가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처벌대신 치료를 받는 이유도 이들이 고의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기 보다는 정신적인 장애로 인해 그런 행위를 했다는 시각 때문이다. 즉, 자유 의지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사실을 따져보면 이에 대한 판단마저도 쉽지 않다. '미필적 고의'니 '인식있는 과실'이니 하는 법정 논쟁을 차치하더라도 일련의 뇌 과학 실험에 의하면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나 자유 의지가 정말로 있는지 여부조차 불분명하기 때문이다(이에 관한 가장 유명한 실험은 벤자민 리벳의 실험이다. 이 실험에 의하면 우리는 몸을 움직여야겠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하기 전에 이미 무의식 상태에서 움직일 준비를 마친다). 더 나아가 모든 범죄자나 살인자들은 어느 정도 심리적으로 비정상적인 요인을 갖고 있거나 불우한 가정 환경을 가지고 있었거나 사회 부적응자이거나 기타 등등의 갖가지 이유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른다. 옛말에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따라서 이런 고의성을 판단하는 문제같은 소위 분류의 문제에는 항상 '경계값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쉽게 말해 어디까지가 의도성을 갖고 한 행위인가? 라는 것이다. 역시나 인간 존엄성 문제처럼 미묘한 상황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에 나온 '위험한 생각들' 이라는 컬럼집에서 리처드 도킨스가 쓴 '범죄자가 아니라 범죄자의 유전자를 벌하라'라는 컬럼의 내용은 무척 흥미롭다. 도킨스는 우리가 자동차가 고장났을 때 자동차를 벌하기 보다는 고장의 원인을 찾아 고치는 것처럼 범죄자에게도 그를 직접 벌하기 보다는 범죄 행위의 원인을 찾아 이를 해결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는 다소 검증 안 된 가설을 바탕으로 과장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사실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주장들이 다 그렇다.) 어쨌든 적어도 사형 제도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자면 어느 정도 바람직한 결론을 내는데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범죄자들을 처단한다. 그렇다면 범죄자를 직접 처벌하는 것보다는 범죄 행위의 원인이 되는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마치 우리가 병에 걸렸을 때 증상만을 보고 직접 대응을 하기 보다는 발병 원인을 찾아 제거하는 것이 더 좋듯이 말이다(다소 빈약한 논거지만 미국 드라마 '하우스'를 보면 정말 절실히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사로운 범죄에 이것을 적용한다는 것은 노력 대비 효율성 면에서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사형을 집행해야 할 정도의 강력 범죄에 대해서는 이 논리를 적용하는 것이 어떨까? 다시 의학을 예로 들자면 우리는 감기나 가벼운 알레르기성 질환은 다소 피상적인 치료를 하지만 천연두, 뇌염, 독감같은 치명적인 질환에 대해서는 예방 접종을 하지 않는가?
 심지어 인간은 사회적으로 볼 때 매우 소중한 '자원'이다. 따라서 살인을 저지른 중대 범죄자라고 해서 단순히 죽여버리는 것보다는 갱생의 길을 걷게 하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이들 사형수들은 단순히 보복이나 본보기로 삼을 대상이 아니라 보다 건강하고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임상 사례'나 '예비 자원'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위의 주장을 실천하는데 있어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이 있다면 역시나 인간의 부정할 수 없는 보복 심리일 것이다. 당장 나부터도 내 사랑하는 연인의 강간범이나 부모의 원수가 사회 안녕을 위한 어엿한 역할을 수행하는 자원으로 대우받는 것을 인정하기 보다는 아마도 정의의 이름으로 처단하기 위해 칼을 갈지 않을까?

덧글

  • mu 2008/03/19 02:31 # 삭제 답글

    트랙백 답방왔습니다.
    리벳 실험결과를 통해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인간에게 의지가 없는게 아닙니다.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통제하는 능력에 관한 한 인간에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이를 두고 Free will을 없지만 free won't는 있다고 합니다. 죄를 저지르면 벌받는다는 규범이나 법제도가 바로 free won't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런 점에서 사형제도가 불합리하다는 겁니다. 후자의 입장에서 봤을때, 사형제도는 그리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사형제도를 유지하는데 대한 각종 비용 (경제적 심리적 윤리적) 막대할뿐 아니라, 범죄억제효과가 종신형만큼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사형제도가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다 인간적인 방법을 선택하자는 주장이 왜 문제가 되는지 알수 없습니다. 꼭 살이 타들어 가는 냄새를 피워가며 죽어가는 고통을 가하는 사형집행 방식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라도 있습니까? 님은 인간이 인간을 죽이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는게 위선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현실이 존재한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 silverbird 2008/03/19 15:49 # 답글

    // mu
    1. free will 과 free won't 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자기 통제도 결국 의지의 한 형태 아닌가요?
    2. 사형제도 유지에 필요한 경제적 비용이 그 사람을 평생 먹여살리는 비용보다 더 큰지는 다소 의심스럽습니다.
    3. 범죄 억제 효과 측면에서 종신형보다 사형이 더 효과적이지 않다고 확신하시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윗 글에서 언급했듯이 그건 상대적인 가치관의 문제입니다(저라면 죽는 것보단 나라에서 주는 밥 세끼 꼬박꼬박 챙겨먹으면서 사는 걸 택하겠습니다).
    4. 보다 인간적인 사형 집행 방법을 택하는 문제가 위선이라고 주장한 이유는 그것이 사형수 당사자의 입장보다는 제 3자의 자기 만족이나 자기 위안의 의미가 더 크지 않은가? 하는 생각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사형 집행 시 가급적 덜 고통스러운 방법을 택하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굳이 그런 이야기를 들먹거린 이유는 사형 제도에 대한 논의를 하는데 있어 인간 존엄성을 주된 논거로 삼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였습니다.
  • 헐~!!!!!!!! 2010/11/16 11:18 # 삭제 답글

    음... 너무 길다.
    조금 더 간추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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