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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령, 우주적 차원에서 윤회를 말하다. 단상

 얼마 전 서점에 갔습니다. 입구에 이순원의 소설 은비령이 잔뜩 진열돼 있더군요. 한 10여년 전에 소설집 '말을 찾아서'에서 무척 인상깊게 읽었었기에 반가웠습니다. 아마 은비령만 따로 재출간된 모양입니다. 잠깐 앞부분의 소개를 보니 드라마로도 만들어졌었나 보네요.

 은비령은 한 남자와 그 남자의 죽은 친구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이 둘은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물론 유부남과 과부라는 신분에 얽매여 자신의 감정을 속시원히 들어내지 못하는 소심남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구요. 그리고...별과 우주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은비령에서 이 세상은 2천 5백만년마다 한번씩 찾아오는 혜성과 같은 존재입니다. 때문에 우리네 삶은 2천 5백만년마다 한번씩 반복됩니다. 그래서 이 두 소심남녀는 2천 5백만년 후에 다시 사랑할 것을 기약합니다.

 우연히도 어렸을 때 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창 과학에 관심이 많던 그 시절 '빅뱅에 의해 우주가 창조되어 계속 팽창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다시 수축되어 완전히 소멸되리라'라는 어떤 과학 잡지 특별 기사를 읽고는 다음과 같은 공상을 한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유투라인에서 농구공을 던진다고 해보자. 계속 슛이 성공하려면 최초 슛이 성공했을 때와 똑같은 힘과 방향으로 공을 던지면 될 것이다. 이 때 100% 확실하게 계속 성공하려면 처음 슛이 성공했을 때와 완벽하게 똑같은 - 이를 테면 주변 공기의 상태, 농구공에 묻은 이물질의 양, 골대의 미세한 진동이나 위치 변화 기타 등등 모든 환경적 조건도 완벽하게 같고 내 신체적,정신적인 상태도  완전무결하게 똑같은 - 조건이라면 100% 확실하게 똑같은 슛을 쏠 수 있을 것이다. 
 에너지 불변의 법칙에 의하면 우주 안의 모든 에너지의 총량은 언제나 똑같다. 때문에 어떤 외부 유입이나 손실도 없는 상태에서 우주가 소멸해서 하나의 특이점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다시 빅뱅이 일어나 우주가 재 창조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최초 빅뱅 상태와 완전히 똑같은 조건일테고 그러면 모든 과정이 그 이전과 완벽하게 동일한 단계를 밟아 나갈 것이다. 동일한 시점에 지구가 생겨나고 역시 동일한 시점에 인간이 태어나고 내가 다시 생길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의 난 수많은 재 창조 속에 생겨난 이전 우주와 완벽하게 동일한 나일 것이고 동일한 행동과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뭐 이런 제 공상은 사실 은비령의 그것에 비하면 다소 멋대가리가 없습니다. 제 공상대로라면 결국 저 소심남녀는 다시 만나더라도 여전히 똑같은 소심한 하룻밤의 사랑을 하고 다시 다음을 기약하겠죠. 영원히요...

 어쨌든 이런 윤회는 많은 종교와 예술에서 생각의 꺼리였습니다. 아마도 윤회의 매력은 영원성에 있겠죠. 그 끝을 알 수 없는 영원한 삶의 반복은 불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큰 위안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영원'이란 얼마만큼의 시간인 것일까요? 은비령에서는 영원이라는 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일화가 나옵니다.
 북쪽의 어떤 지방에는 스비스조드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는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00마일이나 되는 커다란 바위산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천년마다 한 번씩 조그만 새가 날아와 바위산에 부리를 갈고는 다시 날아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천년마다 한번씩 새가 부리를 갈아서 그 바위산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영원의 세계에서 하루라고 합니다. 
 천체 물리학 같은데서 우주의 나이 어쩌구 할 때 언급되는 시간 못지않게 참 스케일이 크죠?

 이런 비슷한 개념은 불교에서도 나옵니다. 불교에는 '겁'이라는 시간 단위가 있습니다. '전생에 500겁의 시간동안 인연을 쌓아야 현생에 옷깃을 스치는 인연을 만들 수 있다'고 해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나왔죠. 
 '겁'은 상상할 수 없이 긴 시간을 의미하기에 보통 정량화해서 표현하지는 않고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굳이 정량화하면 4억 3천 2백만 년이라고 합니다). 가령 '섬돌위에서 버선발로 승무를 춰 그 섬돌이 다 닳아 없어질때까지 걸리는 시간' 정도는 소박한 예이고 '둘레가 40리가 되는 큰 바위에 3년마다 선녀가 내려와 옷깃을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데 이 바위가 닳아없어지는데 걸리는 시간' 이라는 예도 있죠.

 이렇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찔해지는 시간과 비교해볼 때 인간의 삶은 참 거시기해지죠. 이런 시간들 앞에서 영원한 사랑 어쩌구 하기도 참 겸언쩍어지구요. 그렇다면 아마도 저 소심남녀의 사랑이 하룻밤으로 끝나버린 것도 어쩌면 다음 생에 대한 무책임한 기약 때문이었다기 보단 그런 블록버스터급 스케일의 우주 앞에서 불과 몇 십년 정도의 생을 같이 하건 하룻밤의 추억으로 남기건 별 상관이 없겠다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p.s. 사실 이런 윤회나 인연에 대한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보면 전혀 말이 안됩니다. 옷깃을 스치기 위해 전생에 500겁의 인연이 필요한데 그렇다면 그 500겁의 인연을 위해선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의 인연을 쌓아야 하고 또 인연을 위해서는... 식의 무한 재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죠(뭐 사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칸토어의 집합론도 좀 황당하긴 하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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