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번째 원숭이, 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

http://www.skepdic.com/monkey.html
http://www.csicop.org/si/9605/monkey.html
http://www.uhh.hawaii.edu/~ronald/HMP.htm
http://en.wikipedia.org/wiki/Hundredth_Monkey

 '백번째 원숭이 현상' 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어떤 행동 유형이 임계치를 넘어서는 순간 급작스럽게 개체들 사이에 널리 퍼지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이 현상이 '백번째 원숭이 현상'이라고 불리게 된 계기는 아래와 같습니다.

 일본의 고지마라는 섬에 짧은 꼬리 원숭이 한 무리를 동물 행동학자들이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원숭이들에게 줄 요량으로 고구마와 밀 등을 주로 해변가같은 공개된 장소에 놔둡니다. 그런데 어느 날 18개월된 암컷 원숭이 하나가 흙이나 먼지가 묻은 고구마를 물에 씻어서 먹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곧 주위 동료들이 이 행동을 따라하기 시작하죠. 처음에는 '씻어먹기'를 하는 원숭이 수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어느 시점이 되자 갑자기 이 행동을 하는 원숭이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해서 거의 대부분의 원숭이들이 고구마를 씻어 먹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경영/마케팅에서 말하는 '티핑포인트'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백번째 원숭이 현상'에는 더 놀라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렇게 고지마 섬에 사는 원숭이들 사이에서 고구마를 씻어먹는 행위가 급격히 증가하는 시기에 이번에는 전혀 물리적인 접촉이 없던 주변 섬에 사는 원숭이들까지 먹이를 물에 씻어 먹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실 전 최대한 극적인 표현을 자제한 것이고 원래 '백번째 원숭이 현상'을 처음 주장한 Lyall Watson 의 이야기는 극적이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처음 고지마 섬의 원숭이가 고구마를 씻어먹기 시작한 것이 1953년이었고 1958년 가을 어느날 100번째 원숭이가 고구마를 씻어먹게 되자 그날 저녁엔 그 섬의 모든 원숭이들이 동일한 행동을 하게 되었고 심지어 주변 섬에까지 그 행동이 순식간에 널리 퍼졌'다고 합니다(오해하실까봐 첨언하자면 왓슨은 100이라는 숫자는 단지 특정 임계치를 상징하는 의미이지 정량적인 의미는 없다고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좀 심하게 말하자면 '뻥'입니다. Lyall Watson이라는 사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그는 우리에게 '털없는 원숭이'로 잘 알려진 데스몬드 모리스와 같이 런던 동물원에서 근무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가 '백번째 원숭이 현상'을 자신의 책에서 언급한 것도 진실이며, 실제 고지마 섬에서 원숭이를 연구한 것도 진짜지만 고구마를 씻어먹는 원숭이의 숫자가 특정 시점에 급작스레 증가했다거나 다른 섬에까지 그 행동이 펴져나갔다는 이야기는 전혀 증거가 없는, 왓슨이라는 학자가 만들어낸 이야기인 것입니다.

 진실이야 어쨌든 이 이야기는 뭔가 자연의 신비로운 현상 내지는 음모론의 냄새도 적절히 풍기면서 동물, 특히 인간과 유사한 원숭이를 소재로 했기에 친숙한 재미를 주는데다가 극적인 효과도 있기에 사람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고 즐겨 인용되고 있습니다. 주로 '변화하는 인간이 되라' 내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올바른 행동이 모여 큰 사회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라는 식의 계몽적인 이야기에 즐겨 인용되더군요.

 문제는 이 이야기가 지나치게 왜곡되고 곡해되는데 있습니다. 제가 '백번째 원숭이'로 검색한 어떤 글에는 '이 학설(백번째 원숭이 현상)은 1994년에 정식 학설로 인정되었습니다' 라고 되어 있더군요(어느 분야에 정식 학설로 인정되었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혹시 뉴에이지 과학계에서?). 특히 '백번째 원숭이 현상'을 근거로 자연에는 초자연적인 공명 현상같은 것이 있어서 인류 역시 전 지구적인 의식의 각성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하거나 더 나아가 이런 공명 현상 때문에 우리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그렇지 못한 지식보다 더 빨리 습득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가 그럴듯한 이야기일 뿐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유사 과학(psuedo-science)입니다.

 언제부턴가 다이제스트 류의 잡지나 지하철 벽에 붙은 글귀 혹은 미니 홈피나 블로그 등을 통해 이런 식의 감동 스토리 내지는 계몽적인 내용의 에세이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대부분 구체적인 날짜나 인물, 사건을 들먹이며 실화를 가장하여 사람들에게 억지스런 감동을 심어주려고 합니다. 비록 의도가 좋았다고는 하지만 조금만 인터넷을 검색해도 알 수 있는 뻔한 거짓말을 이렇게 사실인양 포장하는 것은 문제라 생각합니다.

 예전에 '펌에 대한 단상' 이라는 글에서 언급했듯이 갈수록 자료의 양이 증가하면서 정보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역사학자들이 자료의 부족으로 진실을 규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면 미래의 역사학자들은 너무나 많은 자료에 치여 진실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요?

 p.s. '백번째 원숭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배경과 내용 및 이것이 허구라는 주장의 근거가 궁금하신 분은 위의 링크들(특히 'The Hundredth Monkey Phenomenon'이라는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p.p.s. 어쩌면 미래의 검색 서비스는 사용자의 의도에 맞추는 의미 검색을 넘어 진위 여부까지 판단하는 감정(鑑定) 검색의 단계에 이르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by silverbird | 2008/07/21 21:53 | 단상 | 트랙백(2) | 핑백(2)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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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ahastudio's .. at 2009/01/27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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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번째 원숭이와 스롤리의 블로토닉 연구소....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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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밈'이나 '엔델레키'는 이런 의미에서 보면 과학 이전의 단계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을 사기라고 부를 수는 없다. 진짜 사기극은 따로 있다. 이전에 글을 썼던 '백번째 원숭이 현상'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Lyall Watson은 '백번째 원숭이 현상'을 거짓 실험을 통해 검증했다고 주장했으며 이후 이 이론은 다른 ... more

Linked at Null Model : 코시마.. at 2009/02/25 19:11

... 100번째 원숭이가 고구마를 씻어먹기 시작하자 다른 섬에서도 갑자기 이런 행동이 출현했다는 '괴담'도 도는데 당연 구라다. 여기에 대해서는 silverbird님의 백번째 원숭이, 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참조. ... more

Commented by polarnara at 2008/07/24 12:27
아마 그런 공명 현상 때문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퍼뜨리는 유사과학이 그렇지 못한 유사과학보다 더 빨리 퍼져나가는 것 같습니다 :p
백 번째의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심없이 그냥 받아들이니까요.
Commented by silverbird at 2008/07/24 19:43
그런 건 굳이 공명 현상을 들먹일 필요 없이 링크 이론이나 군중 심리 정도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텐데...그럼 뭔가 신비로운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재미없어 한단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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