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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좋아하는 자식 만드는 법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단상

 방금 전 EBS에서 지식채널e를 보았습니다. 사교육에 관한 내용이더군요. 뭐 사실 정도의 차이가 좀 있을 뿐이지 자식 공부시키느라 소 팔고 논 팔고 몸도 팔고 그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겠죠...어쨌든 공부 잘하는 사람이 우대받는 사회인 건 확실하고 자식 잘되길 바라는 건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니 결국 자식 공부 잘하게 만들려는 부모 노력을 탓할 순 없을 듯 싶습니다.

 공자님 말씀에 '지지자불여호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고 호지자불여락지자(好之者不如樂之者)'라 했듯이 공부를 잘하려면 우선 공부를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먼저이겠습니다만 이게 참 쉽지 않은 일이죠. 
 근데 자식을 키우기는 커녕 결혼도 하지 못한 제가 무슨 재주로 자식 공부 잘하게 하는 법을 알려줄 수 있느냐구요? 제가 지금부터 해드릴 이야기는 제가 공부 좋아하는 자식을 만든 방법이 아니라 저를 공부 좋아하는(잘하냐고 묻는다면 그저 먼산...) 자식으로 키운 제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즉, 검증된 방법이라는 말이죠).

 두 분 이야기를 모두 하면 너무 길어질테니 - 좀 더 극적인 - 어머니 이야기만 하도록 하죠. 제 어머니는 원래 학교 교사셨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 1989년으로 기억하는데 - 갑자기 공부를 다시 하고 싶다시며 대학원 입학 시험 준비를 하시더군요. 그리고 이듬 해에 건국대학교 국문학 석사 과정에 들어가셨습니다(그때 연세가 49세셨고 TV에서는 김혜자 주연의 '아직은 마흔 아홉'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었죠).

 몸이 많이 허약하셨습니다. 위장병을 항상 달고 사셨고 허리가 안좋아 김치를 담그고 난 다음 날이면 하루 종일 거실 바닥에 누워계셔야 했습니다. 그런 몸으로도 직장 생활을 하시며 공부를 포기하지 않으시더군요. 항상 식구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집안 정리가 되면 9시도 되기 전에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대신 새벽 2시 쯤에 일어나 공부를 하셨죠. 저녁 땐 직장일 및 살림살이 때문에 지치기도 하고 또 어차피 뉴스나 드라마 시청하고 뭐 그러느라 시간이 낭비될테니 차라리 조용한 새벽 시간에 공부하겠노라 였겠죠. 
 부엌에 있는 전기밥솥 손잡이엔 항상 종이조각이 하나 붙어있었습니다. 거기엔 깨알같은 글씨로 영어 단어들이 적혀있었죠. 매일 아침 식사를 준비하시며 외울 단어들이었습니다. 

 몸이 도저히 받쳐주질 못해 교직을 그만두셨지만 몇 년 후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시곤 바로 대학에 출강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게 1996년, 55세의 나이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12년 간 강의를 하셨고 (정정: 1995년에 학위 취득을 하셨고 강의는 94년부터 14년간 하셨다는군요) 10권 남짓의 책을 쓰셨고 중간에 약 2년 간 신학 공부를 하셔서 목사 안수까지 받으셨죠.
 심지어 몇 년 전에 인터넷에 관심을 두시더니 저는 그저 <embed> 태그만 가르쳐 드렸는데 지금은 HTML을 저보다 잘 다루십니다. 싸이 미니 홈피는 물론 엠파스나 다음에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시고, 플래시에 관심을 가지시길래 swish라고 하는 플래시 제작용 소프트웨어를 사다드리기도 했습니다. 그 때쯤부터 아들에게 보내는 메일에 특수 효과가 화려해지더군요...얼마 전에는 누가 외부 강연을 부탁해서 파워 포인트로 발표 자료를 만들었는데 레이저 포인터와 핀 마이크를 어떻게 구해야 하냐고 전화가 왔습니다...

 근데 대체 공부 좋아하는 자식 만드는 법은 언제 알려줄꺼냐구요? 이게 다입니다. 부모가 이 정도로 배우는 것을 좋아하게 되면 자식은 도저히 공부에 흥미를 갖지 않고는 못 배깁니다. 게다가 저렇게 나이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보게 되면 나이를 탓하고 때늦음을 한탄하는 사람을 비웃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고로 10년 죽어라 공부했던 사람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 50년 간 꾸준히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빨간펜 선생님 불러다 눈높이 맞춰가며 창의력 학습시키려고 돈쓸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집에 책 잔뜩 쌓아놓고 부모가 항상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면 애들은 호기심이 생겨서라도 책을 가까이 합니다. 남들 수능/논술 준비하느라 세계 문학 전집 요약본 읽을 때 전 어머니 석사 학위논문(정정: 학위 논문이 아니라 그냥 기말 발표 논문이었답니다.) 도와드리느라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와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을 읽고 줄거리와 둘 간의 유사점을 말씀드려야 했습니다(논문 주제가 헤르만 헤세와 이문열 비교 연구였거든요).

 옆으로 기어간다고 나무라는 어미게가 되고 싶지 않다면 직접 시법을 보여주세요. 그게 아니면 설마 내 자식이 돌연변이이길 바라는 겁니까?

덧글

  • 배재현 2008/07/24 09:17 # 삭제 답글

    우와...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많은 걸 느끼게 하시는군요 ^^
  • 고감자 2008/07/24 10:16 # 삭제 답글

    우앙~~ 대단하신 어머님을 두셨군요.
  • 지민아빠 2008/07/24 12:08 # 삭제 답글

    아 저부터 잘 하라고요? ㅜ.ㅜ
  • silverbird 2008/07/24 13:22 # 답글

    //배재현
    감사합니다...

    //고감자
    그러게요...

    //지민아빠
    이를테면...
  • corba 2008/07/27 18:16 # 삭제 답글

    "자고로 10년 죽어라 공부했던 사람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 50년 간 꾸준히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이 말이 정말 와닿습니다.
  • 짱구엄마 2008/07/28 12:05 # 삭제 답글

    짱구가 공부를 좋아하는 거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않아야겠군요...
  • 2008/07/31 00:52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8/08/02 22:05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silverbird 2008/08/03 10:54 #

    제가 쓴 글은 부모가 어떤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열악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그걸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할지는 다른 이야기겠지요.
    만약 부모가 공부 못한다고 자식도 무조건 공부 못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인간이 발전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강조하지만 제 글은 부모를 향한 글이었지 자식을 향한 변명이 아닙니다!
    이 글을 읽고 '우리 부모는 어쩌구...' 하는 생각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db 2008/09/26 13:06 # 삭제 답글

    뒤집기하는 자식만드는 법은 혹시...
  • silverbird 2008/09/26 21:45 #

    포스에 집중하도록 시키세요...
    (잘 지내시죠? 요다는 잘크고 있는지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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