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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은 사기인가? 단상

 얼마전 우연히 '도킨스와 하우스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 이라는 글을 보았다. 도킨스와 하우스를 좋아하는 아이인 나로써는 무척 가슴 뜨끔한 글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 '내가 흥분해서 '밈'이라는 울트라 초 개구라 사기극은 언급도 안했다' 라는 구절이 있다. 이에 대해 글쓴 분의 생각이 나와 있지 않아 아쉽지만 어쨌든 내 생각을 이야기해보겠다. 

 카르납에 의하면 과학 법칙은 관찰된 사실들에 대한 기술이다. 이에 따르면 과학 법칙은 몇 가지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우선 관찰을 통해 공통된 규칙을 발견하고 이 규칙을 정성 혹은 정량적으로 기술하는 가설 단계, 그리고 가설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실을 유추하는 예측 단계, 마지막으로 예측을 실험 혹은 관찰을 통해 검증하는 단계가 그것이다. 이렇듯 과학 법칙은 어떤 사건 혹은 현상에 대한 기술이기에 형이상학적 힘 즉, 어떤 사건의 근본 원인(예를 들어 인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존재하나? 같은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철학이나 종교와는 많이 다르다. 

 그러나 간혹 이런 형이상학적인 힘과 과학 법칙을 혼동하는 과학자도 있다. 카르납은 과학 철학 입문이라는 책에서 독일의 철학자 드리쉬를 그 예로 든다. 드리쉬는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는 몇 가지 특성이 있으며 그런 생물만이 가진 고유 특성을 야기하는 어떤 힘이 존재할 것이라 가정하고 그 힘을 엔델레키라 불렀다. 드리쉬의 주장에 의하면 엔델레키는 물리적인 힘과 구별되는, 생명체만이 가지는 어떤 힘이며 이 힘의 크기에 따라 진화의 정도가 정해지고 세포 재생이나 인식 같은 생물학적 현상의 원인이 된다. 

 이에 대해 카르납은 드리쉬의 엔델레키 이론은 과학이 아니라고 비판하며 그 원인으로 엔델레키는 앞서 말한 과학 법칙의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고 따라서 엔델레키 이론을 통해 어떤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드리쉬는 엔델레키가 생물 현상의 원인이라고 주장했지만 엔델레키와 생물체간의 어떤 사실적 관계에 대한 소위 '법칙'이라 부를만한 어떤 것도 기술하고 있지 못하며 따라서 이전에 알고 있던 지식을 토대로 엔델레키 이론을 적용했을 때 새로운 현상을 예측하거나 추가적인 지식을 얻을 수 없다. 이건 조금 비약하면 원인 불명의 실종 사건에 대해 UFO나 4차원 공간이 그 원인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상당수의 유사 과학이 바로 이런 엔델레키에 대한 카르납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밈'은 어떨까? '밈'은 '이기적 유전자'에서 도킨스가 주장한 개념이다. 이 책에 따르면 도킨스가 '밈'이란 것을 떠올리게 된 이유는 문화적 진화와 유전적(생물학적) 진화의 유사성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다시 유전자란 것이 대체 무엇인가? 라는 의문과 결합한다.
 물론 좁은 의미에서 유전자란 DNA에 저장된 염기 서열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하지만 도킨스는 여기서 더 나아가 생물학적(혹은 화학적) 관점이 아닌 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유전자는 복제와 변이 그리고 선택이라는 과정이 이루어지는 구조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어떤 기본 복제 단위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생물학적 진화가 아닌 문화적 진화에서도 유전자와 비슷한 인식 단위를 생각할 수 있고 이것을 '밈'이라 부른 것이다. 결국 진화 현상에 대한 확장 버전인 셈이다.
 
 어떤 면에서 '밈' 역시 엔델레키와 유사한 면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문화라 부르는 것들이 일종의 유전자같은 요소를 가지고 진화해 나간다는 생각은 무척 신선하고 신비로워 보이지만 역시 어떤 법칙이라 부를만한 정량적 해석이나 예측 행위가 어려우며 따라서 검증도 거의 불가능한 뜬구름 잡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밈' 역시 어떤 과학 법칙이라 부를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한다.
 여기서 우리는 좀더 긍정적인 입장에서 이를 바라볼 수도 있겠다. 우리가 과학 법칙이라 부르는 상당수는 처음에는 인식 혹은 기술의 한계나 관련 지식의 미성숙으로 인해 정량적 측정을 하거나 예측 행위가 가능한 가설 단계에 이르지 못한, 법칙 이전의 단계가 있었다. '밈'이나 '엔델레키'는 이런 의미에서 보면 과학 이전의 단계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을 사기라고 부를 수는 없다.

 진짜 사기극은 따로 있다. 이전에 글을 썼던 '백번째 원숭이 현상'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Lyall Watson은 '백번째 원숭이 현상'을 거짓 실험을 통해 검증했다고 주장했으며 이후 이 이론은 다른 이들에 의해 초자연적 공명 현상과 같은 새로운 이론의 원인으로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과학에서 사기란 이처럼 없는 사실을 근거로 새로운 이론을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그에 반해 엔델레키나 밈은 사기라 부를 만한 어떤 실험적 근거나 검증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즉, 그들은 애초에 사기라 부를만한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유아 단계의 생각들이다. 

 결론적으로 '밈'은 '울트라 초 개구라 사기극'이라는 비난을 받을 만한 대상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밈'은 비록 형이상학적 힘과 과학 법칙에 대한 혼동을 일으키긴 하지만 거짓 검증을 통해 진실인 것처럼 호도된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밈'은 유사과학인가? 이 역시 그렇다고 확실히 말할 수 없는게 상당수의 사람들이 사회 문화 현상을 설명할 때 '밈'을 언급하고 있지만 많은 경우 이것은 어떤 실제적인 법칙으로써가 아닌 일종의 은유처럼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이 '밈'을 말할 때 정말 무언가 '밈'이라고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 혹은 e=mc^2 같은 자연 법칙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밈'에 대한 설명에서 나오는 그런 특성들 즉, 문화와 생명체의 진화 현상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성들을 대변하는 상징어 역할을 할 뿐이다. 이건 마치 아담 스미스가 자유 시장 원리를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칭한 이래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하게 대중에 의해 이루어지는 어떤 커다른 흐름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결국 '밈' 자체가 어떤 사기극이라기 보다는 도킨스나 일부 사람들이 '밈'을 지나치게 남용하는 것이 문제라 하겠다. 나 역시 도킨스의 책을 대단히 좋아하고 진화론 관련 책을 읽는 것을 즐기지만 가끔 책이나 블로그 등을 보다보면 지나치게 모든 현상에 진화론(특히 진화 심리학)을 들이대는 일종의 '망치의 오류'를 경험하곤 한다. 이런 오류를 피하기 위해선 지속적인 의심과 되새김질이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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