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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은 있는가? 내가 읽은 책들


<이미지 출처: 알라딘>

 며칠 전 진화 심리학에 한 관심하는 alankang님이 회사 책장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책장이 내 책상 옆에 있기도 했거니와 아마 나 역시 진화론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게다. 혹시 내가 갖다 놓은 책이냐고 묻더라. 사실 나는 그 때 이 책이 그 책장에 꽂혀 있는지 처음 알았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이 책을 알게 되었고 주말을 빌어 읽게 되었다(책의 두께가 무척 얇은 것도 한 몫 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달리 이 책은 진화론에 대해 설명하는 자연과학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정치적인(특히 좌파와 관련된) 이슈를 이야기하는 인문학서다. 제목에 붙어 있는 '다윈의 대답1' 의 1 이 말해주듯이 이 책은 몇 권의 묶음 중 첫 번째 책이다. 아마도 다윈주의를 배경으로 하는 몇몇 인문학 도서들을 시리즈로 묶은 것이라 추측한다. 그런데 왜 다윈을 언급하는 것일까? 

 이 책에서 저자인 피터 싱어는 오늘날 좌파가 자신들의 이상을 좀 더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선 다윈주의에서 주장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먼저 마르크스 이례로 과거 좌파들이 다윈주의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몰이해로 인해 정치적으로 실패했던 점을 지적하고, 사회과학 분야에서 다윈주의가 갖는 가치와 이를 토대로 어떻게 좌파들이 다윈주의를 수용해서 자신들의 사상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조각공예가에게 나무 한 토막을 건네주고 그것으로 나무그릇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보라. 그가 나무토막을 보지도 않고 이미 자신의 머리속에 그려진 디자인에 따라 나무토막을 깎고 다듬기 시작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략> 정치 사상가들이나 혁명가들 혹은 이들을 추종하는 사회개혁가들은 너무 쉽게 이상 사회의 상을 만들어 내는 반면, <중략> 계획을 추진해나갈 주체인 인간에 대해서는 알고자 하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는다.
<본문 69쪽>

 피터 싱어가 말하는 좌파란 사회적인 약자를 도와 평등한 사회를 이룩하려는 정치적인 행위이다. 즉, 약자를 위한 정치이다. 반면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 개체들은 적자 생존의 법칙에 따라 번성 혹은 소멸한다. 즉, 강자를 위한 법칙이다. 때문에 혹자는 좌파의 생각이 다윈주의에서 설명하는 인간 본성을 역행하는 것이라 비판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나는 순응과 적응, 그리고 역행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곰의 습성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자. 자연은 - 심지어 극지방일지라도 -  일정한 계절 주기를 반복한다. 대개 봄,여름,가을에는 먹이를 풍부하게 얻을 수 있지만 겨울이 되면 그렇지 않다. 만약 곰이 이러한 자연의 본성에 순응한다면 어떻게 할까? 아마 자연의 섭리를 담담히 받아들여 겨울에는 먹이를 먹지 않고 굶어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자연에 역행한다면? 겨울에 먹이가 없어진다는 사실을 이해하거나 인정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먹이를 찾아다니다가 굶어 죽을 것이다.
 물론 곰은 자연에 순응도 역행도 하지 않는다. 곰은 대신 먹이가 가장 풍족한 가을에 충분한 에너지를 체내에 비축한 후 겨울이 되기 전 동굴에 들어가 겨울잠을 통해 비축한 에너지를 평소보다 아주 조금씩 소모하면서 버틴다. 자연의 본성에 적응한 것이다.
 여기서 순응과 적응, 그리고 역행과 적응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 적응은 순응처럼 자연의 본성에 그대로 동화하지 않는다. 한편 역행처럼 자연의 본성을 모른척하거나 거부하지도 않는다. 다시말해 적응이란 자연의 본성을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자신의 원하는 목표를 위한 합리적인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피터 싱어는 지금까지의 좌파들이 다윈주의가 말하는 인간의 본성을 역행해 왔으며 따라서 성공적인 좌파적 정치 활동을 위해서는 다윈주의의 이해를 통해 인간 본성에 적응할 것을 주장한다고 말할 수 있다. 즉, 개체 본성에 대한 사회 문화의 적응이다. 물론 다윈주의의 핵심은 적응이므로 다윈주의에 대한 적응이라는 입장은 다윈주의 자체의 관점에서도 모순되지 않는다. 

 진화론에 기초하여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가 설정한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목표(예를 들어 평등)를 수행하는 데 따르는 비용과 편익을 분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을 찾아내는 데 도움을 준다...
<본문 32쪽>

 내 생각에 이런 식의 생각은 무척 바람직한데 오늘날 과학이 또 하나의 종교처럼 가치 판단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운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어쨌든 인간 본성의 이해를 위해 우선 피터 싱어는 인간 본성을 변하지 않는 것, 약간의 변이를 보이는 것, 그리고 문화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으로 구분한다. 그리곤 좌파들이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인정하고 이해할 것을 주장한다(기존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인간의 본성은 사회 제도를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그래야만이 좌파의 정치적 목표인 약자를 위한 사회 건설을 위한 현실적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피터 싱어가 특히 주목한 인간의 본성은 호혜적 이타주의와 과시주의이다. 먼저 호혜적 이타주의와 관련해서 '이기적 유전자'를 비롯한 여러 글에서 많이 언급된 액셀로드의 '죄수의 딜레마' 실험(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협력과 배반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 여러 가지 전략을 만들고 각각의 전략으로 상대방과 게임을 해서 가장 많이 승리한 전략을 찾는 실험, 여기서 최종 승리한 전략은 이른바 'Tit-For-Tat' 이라는 전략이었는데 이 전략은 최초 게임에서는 무조건 협력하고 그 다음부터는 이전 게임에서 상대방이 협력하거나 배반한 것에 따라 똑같이 대응하는 전략이다.)이 여기서도 언급된다. 
 한편 과시주의는 진화 생물학에서 말하는 핸디캡 원리에 해당하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숫놈이 평소 살아가는데 별 쓸모도 없는(오히려 불리한) 요란한 장식이나 신체 기관(예를 들어 숫사슴의 뿔이나 숫꿩의 꼬리장식)을 암놈에게 과시하는 것은 이런 핸디캡을 갖고도 난 얼마든지 잘 살아남고 있다 라고 하는 점을 암놈에게 알림으로써 자신의 우수한 생존 능력을 입증한다는 이론이다. 

 피터 싱어는 좌파들이 이런 인간의 본성을 적절히 활용해 약자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을 주장한다. 가령 인간의 이타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런 불완전한 호혜성을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는 자들을 없애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든다든지 부자들의 과시욕을 이타적 행위로 승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든지 하는 것이다.

 책의 분량도 적고 내용 역시 깊은 부분까지 다루고 있진 않다. 때문에 짤막한 제안이 있을 뿐 풍부한 해결책이나 주장을 담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진화론을 정치 사회 분야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이 나로써는 신선하게 느껴졌었고 무엇보다 과학적 사실을 가치와 구분해서 받아들이고 이를 토대로 긍정적인 가치를 이끌어 낼 방안을 모색하려는 시도가 무척 마음에 든다. 시간을 내서 나머지 다윈의 대답 시리즈도 한번 찾아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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