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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자의 역설 단상

 전지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 말에는 단지 현재 우리 인간이 보유한 모든 지식만이 아니라 모르고 있는 그 어떤 것들도 알고 있는 것을 말하며 특히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 까지 알고 있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전지자는 실재 존재할 수 있을까?
 신학이나 초자연적인 내용은 배제하고 논리적으로만 본다면 이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미래를 안다'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심각한 역설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과거 '기계론적 결정론'을 좋아하던 일부 철학자나 과학자들은 만약 현재의 모든 상태와 규칙을 알 수 있다면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주는 마치 수학 함수와 같아서 어떤 입력값(과거 상태)에 대해서 일정한 결과값(미래 사건)을 보일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 주식 시장과 같은 경제 현상이나 기상과 같은 자연 현상을 예측하는데에는 이런 사상이 전제로 깔려 있다. 다만 현재의 인류 수준으로는 모든 상태와 규칙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확률과 통계를 이용한다. 과거 통계를 토대로 현재의 상태에서는 앞으로 이러 이러한 사건이 발생할 확률이 대략 몇 % 정도 된다...뭐 이런 식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모든 상태와 규칙을 알게 되면 미래의 사건을 예측하는 전지자가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미래 사건을 정확히 예측하는데 필요한 모든 상태와 규칙 속에는 '모든 상태와 규칙을 알게되는 상태' 그 자체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관련 경제 상황과 사람들의 매매 여부 및 심리 상태, 사회적인 갖가지 사건들 심지어 기상 상태 등등 정말 아주 약간이라도 영향이 있는 그 모든 것을 입력값으로 넣으면 내일 주가가 정확히 계산되는 프로그램이 있고 엄청난 정보력을 토대로 그 모든 입력값을 정확히 구해서 프로그램에 입력했다고 하자. 그러면 아마 내일 주가가 나올 것이고 난 그 값을 토대로 주식을 사거나 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바로 이 시점에서 입력값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즉, 예측값을 보고 행동하는 내 상태 자체는 프로그램에서 알 수 없는 것이다.
 억지를 부려서 이 프로그램은 자신이 내놓은 결과값에 따라 행동할 내 결정까지 미리 예측해서 결과값을 내놓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렇게 예측된 행동에 의해 내놓은 결과에 따라 내 행동은 또 달라질 것이고 그러면 그것까지 예측해서 결과를 내놓으면 또 내 행동은 달라지고...
 결국 순환 오류에 빠지고 만다. 모든 상태과 규칙을 안다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상태이기 때문에 모든 상태를 안다는 것은 말그대로 역설이다. 괴델의 그 유명한 원리를 흉내내자면 '임의의 함수적 세계인 F에서 F의 함수적 성질은 F 세계 안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류기정이란 분은 이런 생각을 토대로 'Simulation Saturated' 라는 흥미로운 아마추어 SF소설을 썼다(이 분의 단편 소설들은 다 재미있다). 소설에서 가까운 미래의 인류는 엄청난 수의 슈퍼 컴퓨터들을 이용하여 지구의 탄생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거의 완벽하게 시뮬레이션하는데 성공한다. 이 전 인류적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는 시뮬레이션을 계속 작동시켜 앞으로 인류가 직면할 미래의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이 더 진행되자 시뮬레이션 속 세계 역시 현재와 비슷한 시점에 똑같은 전 인류적 시뮬레이션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시뮬레이션을 위해 엄청난(지금까지의 거의 두배에 달하는) 계산량이 필요하게 되었다. 결국 장비를 배로 늘렸지만 역시나 시뮬레이션 속 세계의 시뮬레이션에서도 다시 똑같은 전 인류적 시뮬레이션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되었고 다시 계산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다시 그 시뮬레이션 속 시뮬레이션속 시뮬레이션 세계에서도 전 인류적 시뮬레이션 프로젝트가 생겨나고... 가 반복되어 인류는 그 엄청난 계산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이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나고 만다.
 이처럼 모든 상태를 알고 그것을 토대로 뭔가 예측되는 결과에 따라 어떤 행동을 하려는 순간 우리는 순환 오류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 가지 대안이 있다. 모든 것을 알되 그 안다는 사실이 다른 상태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하면 된다. 위의 주식 이야기를 다시 꺼내자면 내일 주가를 정확히 알더라도 주식 시장에 영향을 미칠 만한 어떤 행동(주식을 사고 팔거나 누구에게 이 사실을 알리거나 하는)도 하지 않을 뿐더러 심지어 자신의 마음 가짐 조차도 마치 성철 스님 마냥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비록 완벽하진 않지만 우리는 함수적 세계인 이 우주 밖에 존재하는 것처럼 흉내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했을 때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건 마치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야자 열매가 떨어지는 소리 같은 것이다. 이 야자 열매가 떨어질 때 소리가 났다고 할 수 있을까? 소리가 났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믿음이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니 그냥 믿어야 하나? 이건 마치 러셀의 찻주전자 같은 것이다.

 또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왕 주식 이야기를 했으니 계속 이어가보자. 가령 '오마하의 현인' 보다 더 뛰어난 '오바마의 현인'이라 불리는 주식 투자자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가 투자한 주식은 십중 팔구 가격이 치솟으며 그가 정리한 주식은 여지없이 바닥을 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투자하는 주식이 오를 것이라 믿고 그 주식을 사려고 몰리며 그가 어떤 주식을 팔면 사람들도 그 주식이 반드시 떨어질 것이라 믿고 그 주식을 정리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가 어떤 회사의 주식을 사면 많은 사람들이 그 주식을 사려고 할테니 가격이 상승할 것이며 반대의 경우에는 그 주식이 폭락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오바마의 현인의 행동은 미래에 대한 예측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저 주식 가격의 변동은 그 현인의 행동에 대한 결과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혹은 어쨌거나 그 주식은 오르거나 내릴 수 밖에 없었던 운명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12마리의 원숭이'나 덴젤 워싱턴 주연의 '데자뷰'같은 영화는 뉘양스는 조금 다르지만 이런 관점을 취한다고 볼 수 있다. 미래를 예측하고 취한 행동이 결국 예측했던 미래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순환 인과 관계를 갖는 것이다.

 이제 다시 묻겠다. 전지 혹은 미래를 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무슨 의미를 갖는가? 위 생각대로라면 이것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즉, 우리가 미래를 안다는 것은 역설이다. 고로 전지하다는 것은 역설이다.

 이런 면에서 현재의 상황을 토대로 앞으로의 일을 예측하거나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대비하고 준비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어리고 성근 행동인가? 탈레브가 썼듯이 검은 백조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그 순간에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최선의 행동은 현재에 충실하게 그저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마치 greedy algorithm 처럼...

 p.s. 내가 왜 몇 달 간의 공백기 끝에 뜬금없이 이런 맹랑한 글을 썼는지 궁금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뭐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혹 전지자라면 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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