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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안철수, 홍준표 - 사람들은 왜 리더가 되는가 혹은 되려하는가? 단상

 1. 예전에 홍준표 위원이 원내 대표를 사퇴한 직후 기자가 당 대표에 나설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원내 대표까지 해 본 사람이 앞으로 할 수 있는 자리가 당대표밖에 더 있겠느냐?' 고 답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얼마 전 그는 당대표 후보로 나섰지만 안상수 의원에게 패했다.

 2. 언젠가 케이블 TV에서 시골의사 박경철님이 하는 - 게스트로 출연하는 낸시 랭만 없다면 프로그램의 품격이 한 500% 정도는 올라가지 않을까 생각하는 - 한 인터뷰 프로를 본 적이 있다. 인터뷰 대상자가 안철수 교수였는데 인터뷰 중간에 갑자기 요즘 안철수 교수님이 차기 대권 주자로 언급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안철수 교수가 자신은 정치에 뜻이 없다라고 답하자 이에 대해 박경철님은 '정치권에 특히나 도덕적 불감증이 만연해 있는 요즘 시대에 교수님같은 분이 바람직한 리더상을 제시하는 것은 이 사회에 대한 책임같은 것이 아니겠느냐' 며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더 재밌는 것은 그 후 다른 방송에서 박경철님에게 거의 비슷한 질문(정치계 입문)을 다른 진행자가 했고 박경철님 역시 '자신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생각도 없다'고 답변 하는 것을 봤다.

 3. 창천항로라는 만화책이 있다. 조조를 중심으로 다시 쓴 삼국지라 할 수 있는데 기존의 삼국지, 특히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에겐 파격적으로 느껴질 만큼 철저히 조조를 세기의 영웅이자 완벽한 리더로 묘사하고 있다. 암튼 이 창천항로의 종반부에 보면 동소가 조조를 위공으로 추대하기 위해 순욱을 설득하는 장면이 나온다. 
 순욱은 조조를 위공으로 추대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날 뿐더러 조조 자신도 그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며 반대하지만 동소는 조조를 위공으로 추대하는 것은 단순히 조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밑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적절한 논공행상의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조조가 영원히 승상의 직위에 머물러 있다면 그 동안 조조를 위해 온갖 고난를 헤치며 공을 세운 수많은 신하들은 아무리 잘나봐야 더 이상 높은 직위에 올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순욱은 이 말을 듣고 더이상 반박하지 못한다.


 '피터의 원리' 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자신이 무능력해지는 수준까지 승진한다는 말이다. 얼핏 들으면 모순되는 것 같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럴 듯 한 말이다. 어쨌든 피터의 원리가 주는 교훈은 이렇다. '행복한 삶, 건강한 사회를 만들려면 니 주제를 파악해라'
 맞는 말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냉철하게 파악해서 거기에 적합한 수준에서 일한다면 참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우선 사회적으로 우리는 은연중에 '정체 = 퇴보' 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스스로가 자신의 수준에 딱 맞는 직위에 있다고 생각할지라도 사회는 그런 정체(停滯)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른바 '붉은 여왕의 원리'이다. 위에 언급한 사례에서 홍준표가 그런 예이다(그렇다고 홍준표가 당대표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그런데 사실 정말 뛰어난 사람들은 저런 '붉은 여왕의 원리'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능력은 이미 충분히 검증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정체는 오히려 겸양의 미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이제 뛰어난 자질을 갖춘 인물들은 소위 '사회적 책임론'에 시달리게 된다. 사람들은 말한다. '당신들은 리더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갖춘 인물이다. 그런데 이 사회를 보라! 얼뜨기들이 리더랍시고 설치며 사회를 혼동에 빠뜨리고 있다. 자 그대들이 나서줘야 한다. 이 사회의 정의를 위해~'
 이제 이 훌륭한 능력을 갖춘(그러나 정말 사회 정의를 실현할 만한 리더로서의 준비는 덜 된) 이들은 곤란함을 느낀다. 그들의 겸양은 이제 더 이상 미덕이 아니며 그들은 불의를 못본척 피하려는 나약하고 무책임한 사람으로 치부될 위기에 처한다. 결국 사회적 책임감에 불타올라 성급히 정의의 사도가 되려는 순간 그들의 날개는 녹아 없어져 추락하고 만다.
 안철수 교수는 그나마 아직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았지만 실제 얼마나 많은 소위 '이 사회의 리더 자격이 있었던' 인물들이 '사회적 책임론'에 빠져 황급히 바보 병신이 되었는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듯 싶다.

 마지막 경우는 더 안습이다. 이미 크든 작든 한 조직의 리더로 있는 사람들은 이제 개인의 영달 뿐만 아니라 밑에 사람들의 안녕과 복지에도 신경써줘야 하는 위치에 처해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더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하며 그들이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그들의 리더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줘야 한다. 리더가 정체되면 그 밑에 사람들도 정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밑에 사람들은 자신이 계속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자신의 리더를 끊임없이 더 높은 자리로 밀어 올린다.
 그런데 산도 정상에 가까워 질수록 오르기가 힘들며 직장에서도 과장에서 부장되는 것보다 부장에서 상무되는게 더 힘든 법이다. 결국 리더는 점점 힘이 부친다. 그들이 설령 더 이상 오르기를 멈추고 싶더라도 이미 그러기에는 그를 밀어 올리는 사람들의 수와 힘이 커져 있게 된다.
 심지어 리더를 밀어올리던 이들도 어느 순간 리더가 되어 밑에 사람들에 의해 밀려 올라간다. '피터의 원리'에선 그나마 자기가 무능력해지는 순간 더이상 오르기를 멈출 수라도 있지만 이건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난 열차와도 같다.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지면 맨 위에 있던 리더는 바보 병신 정도가 아니라 최소한 사망이다(실제 우리는 그렇게 한 사람을 보내버린 전적이 있다).

 예전에는 (뭐 내가 누구에게 사회적 책임을 강요 받을 만한 깜냥은 아니니)첫 번째 경우에 대해서만 조심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요즘은 세 번째 경우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난 혹시 지금 정체되는 것이 두려워 앞으로 달려가고 있지는 않을까? 그리고 그 때문에 누군가를 밀어 올리고 있지는 않을까? 

덧글

  • zzaratra 2010/07/26 09:24 # 삭제 답글

    재밌네요.. ^^ 지위나 목표 그런것이 개인적인 거라고 생각 할수 있지만.. 이렇게 얽혀 있는것을 보면요.. 글 재밌게 보고 갑니다.
  • silverbird 2010/07/27 09:32 #

    감사합니다
  • 엔트로피 2010/07/26 19:26 # 삭제 답글

    흥미 있고 재미난 이야기 잘보고 갑니다. 실제 우리는 그렇게 한 사람을 보내버린 전적이 있다. 에서 좌절 한번 합니다.
    님의 블로그는 피드해서 구독하겠습니다..
  • silverbird 2010/07/27 09:33 #

    구독하실만한 글은 잘 못쓰는데...어쨌든 감사합니다.
  • Gram 2010/07/27 09:50 # 삭제 답글

    본문 좌우에 여백을 좀 두시면 어떨까 싶네요. 보여지는 문장의 길이가 길다보니 읽기에 약간 불편하네요 ㅎ
  • silverbird 2010/07/27 21:52 #

    음...그렇군요. 스킨 변경을 고려해 보겠습니다.
  • andend 2010/07/27 10:30 # 답글

    최근들어 가장 재미있게 읽은 글입니다. 구독해서 꾸준히 봐야겠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silverbird 2010/07/27 21:52 #

    감사합니다.
  • 토마스 2010/08/02 00:22 # 삭제 답글

    조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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